[응답하라 1988] 최택 – 고요한 물결 속 감정이 흐르는 사람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박보검 분)은 다섯 친구 중 가장 조용한 인물이다. 말이 적고, 감정 표현이 서툴며,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조용한 존재감은 시청자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이 글에서는 최택이라는 인물의 내면 심리, 감정 표현 방식, 대인관계, 그리고 자아 확립 과정을 중심으로, 그가 단순한 ‘순둥이 천재’가 아닌,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이룬 복합적 캐릭터임을 분석해본다.


1. 바둑 천재, 그러나 삶 앞에서는 내성적인 아이

최택은 세계적인 바둑 기사다. 하지만 바둑판을 벗어나면, 말수도 적고 사회성도 부족해 보인다. 친구들과 놀 때도 늘 조용히 앉아 있고, 대화보다는 관찰자적 태도를 유지한다.

이런 성향은 단순한 성격이라기보다, 어린 시절의 환경이 만든 내면적 구조일 수 있다. 어머니 없이 자라난 그는, 아버지와 둘만의 조용한 세계에서 늘 조심스럽게 감정을 다뤄야 했다. 또한 어린 나이에 바둑이라는 승부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자기 감정보다 집중과 절제, 통제력을 우선하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2. 감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 대신 행동으로 표현한다

최택은 친구들에게도, 덕선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늘 정확하고 진심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덕선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도 그는 복잡한 말보다 “나는 네가 좋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런 표현은 감정의 깊이는 크지만, 표현 방식은 단순하고 명확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비언어적 애정 표현형(nonverbal affection style)에 해당한다. 말보다 행동, 시선, 존재감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성향이다. 그는 마음이 없어서 조용한 게 아니라, 마음이 너무 깊어서 쉽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3. 고요하지만 단단한 자존감의 소유자

최택은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는다. 친구들이 떠들어도 휘둘리지 않고, 승부에서 졌을 때도 묵묵히 감정을 안고 극복해낸다. 이는 자기확신 기반의 자존감(self-assured self-esteem)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기준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굳이 그것을 외부에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에는 확실한 존재감과 결단력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4. 덕선과의 관계 –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사랑

최택과 덕선의 관계는 처음에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시청자가 점차 눈치채게 되는 건, 최택이 덕선에게 가장 안정적인 존재였다는 점이다.

그는 덕선을 존중하고, 감정을 강요하지 않으며, 늘 그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관계는 안정형 애착(secure attachment)의 특성을 보여준다.

최택은 덕선이 혼란스러울 때 감정을 흔들지 않고,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며 기다릴 줄 아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말없이도 ‘감정적 안전지대’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5. 친구들 사이의 역할 – 조용한 조율자

쌍문동 친구들 사이에서 최택은 중심에 서기보다는 갈등이 생겼을 때 가만히 옆에서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다. 극 중 정환과 덕선 사이,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에서 최택은 자기 감정을 주장하기보다, 상대를 배려하고 갈등을 피하는 쪽을 택한다.

이런 태도는 ‘피하고 숨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도를 조절하려는 감정 지능이 높은 사람의 방식이다. 그는 무심한 척하지만, 누구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민감하고 섬세하다.


마무리 – 조용하지만 가장 단단한 사람, 최택

'응답하라 1988'에서 최택은 크게 웃기지도 않고, 드라마틱한 장면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이야기 전체에 정서적 중심축이 된다. 말수는 적지만 감정은 깊고, 앞서 나서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이며, 무심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애정 깊은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인물. 그는 말이 아닌 존재로 사랑을 증명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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