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바이, 마마!] 차유리 – 죽음 이후에도 엄마로 남고 싶은 마음
tvN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는 죽은 엄마가 다시 사람들 곁에 머물며 삶과 이별을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독특한 판타지 휴먼 드라마다. 그 중심에 선 차유리(김태희 분)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49일 동안 다시 이승에 머무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다. 오직 딸의 엄마로서, 마지막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차유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성애, 미해결 감정, 죽음과 존재의 의미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탐색해본다.
1. 죽었지만 떠나지 못한 사람 – 미해결 감정의 잔재
차유리는 죽었지만 이승을 완전히 떠나지 못한 영혼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눈을 감은 순간부터, 딸이 자라는 모습을 매일같이 지켜본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존재를 드러낼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엄마이되 엄마가 아닌 존재로 살아간다.
이것은 단순한 유령 서사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차유리는 미해결 애도(unresolved grief)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겨진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미련 때문에 자기 존재를 놓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녀는 죽음보다,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관계’가 더 고통스럽다.
2. 딸을 향한 집착이 아닌, ‘존재 이유’의 갈망
차유리는 딸을 향한 애착이 매우 강하다. 남편이 재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딸을 키우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이 감정은 언뜻 보면 질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고통에 가깝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의 단절(attachment rupture) 상태다. 특히 자녀와의 관계는 자아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이기 때문에, 그 관계가 갑자기 끊기면 자신의 존재 이유 자체가 붕괴된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차유리에게 딸은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있었음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다.
3. “엄마로 다시 살게 해준다면” – 조건 없는 모성의 이면
차유리는 49일 동안 다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존재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녀는 딸을 위해 위험한 선택을 감수한다.
이는 희생적인 모성애로 읽힐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심리적 욕구는 ‘자기 역할의 완성’을 향한 갈망이다. 죽음은 차유리에게 너무 갑작스러웠고,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떠났다는 미안함과 무력감이 내면에 강하게 남아 있다.
따라서 그녀의 선택은 감성적 희생이 아니라, 자기 역할을 다시 완성하려는 회복적 충동(restorative impulse)으로 해석할 수 있다.
4. 가족의 행복을 지켜보는 고통 – 내가 없는 삶의 풍경
차유리는 49일 동안 살아 있지만, 가족은 이미 그녀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재혼했고, 아이는 새엄마에게도 정을 느끼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녀의 표정은 복잡하다. 기쁘면서도, 씁쓸하고, ‘내가 없어도 잘 사네’라는 슬픈 위로가 섞여 있다.
여기서 차유리는 질투가 아니라 상실감을 다시 경험한다. 특히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나는 없어도 되는 존재였나’라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이 과정은 자아 통합(ego integrity)을 위한 중요한 단계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는 죽음을 앞둔 인간이 반드시 거치는 내면의 화해 과정이다.
5. 다시 떠날 준비 – 존재를 내려놓는다는 것
드라마 후반, 차유리는 결국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딸에게도, 남편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선택을 한다.
이것은 단지 눈물의 이별 장면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차유리는 자기 존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진짜 이별을 선택한 것이다. 즉, 애착의 완전한 해소(detachment), 존재의 수용(acceptance), 그리고 진정한 이별(grief closure)이다.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들보다 먼저, 스스로 자신을 떠나보낸다.
마무리 – 엄마라는 존재, 죽음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
'하이바이, 마마!'의 차유리는 죽었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살았다. 그녀는 육체를 떠났지만, 엄마로서의 마음만은 끝까지 지키려 했다. 그리고 그녀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엄마란 무엇인가? 사랑은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가?”
차유리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사랑을 전하고, 용서를 배우고, 이별을 마무리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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