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고문영 – 사랑받지 못한 사람의 애착 장애와 회복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상처 입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감정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감성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 중심 인물 중 한 명인 고문영(서예지 분)은 베스트셀러 동화 작가이자, 공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가진 독특한 여성 캐릭터다.

하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말투와 거침없는 행동은 본래의 성격이 아니라, 지속적인 애정 결핍과 부모의 학대 속에서 형성된 심리적 방어기제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고문영의 어린 시절, 애착 형성 과정, 인간관계의 회피와 분노, 그리고 치유의 여정을 통해 그녀의 애착 장애와 회복의 심리 구조를 분석한다.


1.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고문영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다. 어머니는 지극히 통제적이고,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며, 아버지는 무기력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남는다.

이런 양육 환경은 고문영에게 안정적 애착(secure attachment)을 제공하지 못했고, 대신 그녀는 회피형-불안정 애착(avoidant-insecure attachment)을 형성하게 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 거리를 두고,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존하는 것을 약점이나 위험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고문영은 타인을 밀어내고, 스스로를 보호하며, 외로움조차 “괜찮아”라고 말하며 애써 무시한다.


2. 타인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

고문영은 말과 행동이 날카롭고 예의범절을 무시한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먼저 상처받기 전에 상대를 밀어내자”는 심리적 방어가 자리잡고 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반응성 공격성(reactional aggression)이라 불리며, 정서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먼저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줄이는 방식이다.

그녀는 타인을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가 자신을 버릴까 두렵다. 그래서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대신 무관심하거나 위협적인 태도로 감정을 가리는 것이다.


3. “넌 나한테 왜 친절해?” – 사랑받을 자격에 대한 의심

문영은 드라마 속에서 강태(김수현 분)와 점점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태의 마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왜 날 좋아하냐”고 물으며 의심하고, 불편해한다.

이 장면은 자기 수용(self-worth)의 부족을 보여준다. 사랑받은 경험이 없기에,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낯설고 두렵다. 내가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고 있기에, 타인의 친절은 의심하거나 시험하게 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고문영은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고, 드라마 전체를 통해 천천히 배워간다.


4.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의 치유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고문영은 말로는 강하고 당당하지만, 실제로는 정서적 조절(emotional regulation)이 매우 어렵다. 분노가 쌓이면 폭발하고, 슬픔은 무시한 채 행동으로 돌진한다. 감정의 언어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정은 결국 강태와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조율된다. 처음에는 상처를 주고, 밀어내고, 또 다가오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그 안에서 관계는 감정을 받아주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

심리 치료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안전한 관계(safe attachment)’의 제공이다. 고문영은 강태라는 존재를 통해 “내가 감정을 표현해도 버림받지 않는다”는 경험을 반복하며 변화하기 시작한다.


5.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마주하고, 스스로를 다시 선택하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고문영은 어머니와 관련된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가 끼친 폭력, 공포, 죄책감…
그녀는 그 진실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비로소 ‘어린 고문영’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는 트라우마 통합(trauma integration)의 핵심이다.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된다.


마무리 – 사랑받는 법을 몰랐던 한 사람이, 사랑을 가르쳐준 이야기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고문영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거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법을 배운 적 없고, 사랑받는 게 두려운 사람.

그녀의 변화는 빠르지 않지만, 확실하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아팠던 거였구나”라는 깨달음을 통해 고문영은 마침내 자신의 감정을 선택하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비밀의 숲] 황시목 – 감정 없는 검사, 그는 왜 공정에 집착하는가

[작은 아씨들] 오인주 – 가난 속에서 부의 유혹에 흔들리는 심리 구조

‘고요한 반란’의 심리학: 염미정, 말없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